미국산 쇠고기 없어도 문제없다는 이 나라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자마자 인도네시아는 수입 잠정중단 조처를 발표했다. 쇠고기 자급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산 유통을 강화했기 때문에 미국산 수입을 막아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시사IN(No.244), May. 23, 2012 (자카르타)
5월7일 자카르타 남부 번화가 스나얀에 위치한 맥도널드 24시간 매장은 밤늦은 시간까지 북적거렸다. 손님 중의 한 사람인 변호사 이스마엘 씨는 10여 분 동안이나 점원에게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의 원산지가 미국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웃음을 지었다. “빅맥에 미국산 쇠고기를 안 쓴다니 다행이다.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데 광우병 뉴스를 듣고 꼭 원산지를 묻는다.”
이날 맥도널드 직원은 “우리 매장에서 만든 햄버거 패티는 모두 국내산 쇠고기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계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널드마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는다. 맥도널드 인도네시아의 단티 마가렛 대변인은 4월26일 “우리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쓰지 않는다”라고 언론에 홍보했다. 이런 모습은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인도네시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4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젖소가 발견되자마자 인도네시아 정부와 시장은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불과 이틀 후 인도네시아 농업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잠정중단 조처를 발표했다. 수스워노 농업장관은 “미국이 광우병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광우병이 제거됐다고 발표할 때까지 뼈가 붙은 미국산 쇠고기와 내장 수입을 중단한다”라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의 유력 일간지 <콤파스(KOMPAS)>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발표한 당일 이 뉴스를 사회면 톱으로 다루며 “정부가 잘한 결정이다”라고 칭찬했다.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는 특급 호텔과 레스토랑에만 공급되다가 1998년부터 본격 수입되어 일반 시장에도 유통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인도네시아 시민의 반응은 두 갈래다. “이번만은 정부가 신속하고 결단력 있었다”와 “어차피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이다. 자카르타 시민 에스티 와유니 씨(34)는 남편이 오랜 암투병을 한 뒤라 먹을거리와 건강에 관심이 많다. 에스티 씨는 “평소 정부가 하는 결정들에 불만이 많지만 이번만은 칭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반면 자카르타 코망에 사는 주부 에비 씨(45)는 시큰둥하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는 어차피 미국산 쇠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쇠고기 유통시장에서 차지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그 비중이 매우 낮다. 농업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분기 현재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는 1190t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6% 정도다. 매년 평균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가 80%, 미국산은 20%가 수입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광우병 문제가 불거지자 바로 수입을 중단할 수 있었던 것도 인도네시아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의존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2000년대 들어 수입 쇠고기 쿼터를 주시했고, 2009년부터는 쇠고기 자급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14년까지 예산 1450억 루피아(약 1440만 달러)를 투입해 수입 쇠고기 비중을 줄이고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 정책은 국내 육우업자들의 자생력을 키우고, 수입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잠재운다는 목적에서 정부가 추진한 것인데, 수입업자들과 쇠고기 취급업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 광우병 감염소 소식이 전해지자 오히려 이 수입업자들이 정부의 쇠고기 자립 프로그램 덕을 보았다. 육류수입협회 토마스 섬브링 회장은 인도네시아 신문 <코란 템포>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정부가 쇠고기 수입을 3만4000t으로 제한했다. 이 중에서도 미국산은 약소한 규모여서 수입중단 조처 때문에 쇠고기 수입시장이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수입 잠정중단 조처가 미국과 벌이는 무역전쟁의 시작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코란 템포>의 농업부 출입기자 로잘리나 씨는 “농업부 관계자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정부의 이번 결정이 얼마 전 있었던 ‘미국의 팜오일 걸고넘어지기’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도 오간다”라고 취재 뒷얘기를 전했다. ‘미국의 팜오일 걸고넘어지기’란 이렇다.
지난 2월 초 미국환경보호기구(EPA)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는 팜오일(CPO)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며 검증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인도네시아 팜오일 품질에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수입을 중단할 경우 세계시장에서 인도네시아 팜오일 수출은 타격을 입게 된다. 인도네시아가 미국에 수출하는 팜오일은 전체 수출의 0.6%에 불과하지만 미국 시장의 영향력이 유럽과 다른 대륙에 미치기 때문이다. 팜오일은 인도네시아의 대외 수출품 가운데 석탄(12.5%)과 석유가스(11.2%)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중(8.5%)을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끈할 수밖에 없던 사안이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전초전이라는 시각에 대해 육류유통협회 아흐마디 하디 사무국장은 “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미국산 소는 명백히 문제가 드러난 것이고, 인도네시아 팜오일 문제는 미국의 일방적인 의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인도네시아가 쇠고기 자립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산 유통을 강화했기 때문에 수입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점을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 영자 신문 <자카르타 글로브> 독자 웡데소 씨는 독자토론 게시판에서 “언제까지나 미국 압력에 시달리며 통상 결정이 흔들릴 순 없었는데, 이번 정부의 결정은 현명했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급이 5성급 호텔과 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을 쥐고 흔들 수는 있어도 인도네시아 안방 식탁은 문제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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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맥도널드 직원은 “우리 매장에서 만든 햄버거 패티는 모두 국내산 쇠고기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계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널드마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는다. 맥도널드 인도네시아의 단티 마가렛 대변인은 4월26일 “우리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쓰지 않는다”라고 언론에 홍보했다. 이런 모습은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인도네시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4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젖소가 발견되자마자 인도네시아 정부와 시장은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불과 이틀 후 인도네시아 농업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잠정중단 조처를 발표했다. 수스워노 농업장관은 “미국이 광우병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광우병이 제거됐다고 발표할 때까지 뼈가 붙은 미국산 쇠고기와 내장 수입을 중단한다”라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의 유력 일간지 <콤파스(KOMPAS)>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발표한 당일 이 뉴스를 사회면 톱으로 다루며 “정부가 잘한 결정이다”라고 칭찬했다.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는 특급 호텔과 레스토랑에만 공급되다가 1998년부터 본격 수입되어 일반 시장에도 유통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에 대한 인도네시아 시민의 반응은 두 갈래다. “이번만은 정부가 신속하고 결단력 있었다”와 “어차피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이다. 자카르타 시민 에스티 와유니 씨(34)는 남편이 오랜 암투병을 한 뒤라 먹을거리와 건강에 관심이 많다. 에스티 씨는 “평소 정부가 하는 결정들에 불만이 많지만 이번만은 칭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반면 자카르타 코망에 사는 주부 에비 씨(45)는 시큰둥하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는 어차피 미국산 쇠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쇠고기 유통시장에서 차지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그 비중이 매우 낮다. 농업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분기 현재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는 1190t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6% 정도다. 매년 평균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가 80%, 미국산은 20%가 수입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광우병 문제가 불거지자 바로 수입을 중단할 수 있었던 것도 인도네시아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의존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2000년대 들어 수입 쇠고기 쿼터를 주시했고, 2009년부터는 쇠고기 자급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14년까지 예산 1450억 루피아(약 1440만 달러)를 투입해 수입 쇠고기 비중을 줄이고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 정책은 국내 육우업자들의 자생력을 키우고, 수입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잠재운다는 목적에서 정부가 추진한 것인데, 수입업자들과 쇠고기 취급업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 광우병 감염소 소식이 전해지자 오히려 이 수입업자들이 정부의 쇠고기 자립 프로그램 덕을 보았다. 육류수입협회 토마스 섬브링 회장은 인도네시아 신문 <코란 템포>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정부가 쇠고기 수입을 3만4000t으로 제한했다. 이 중에서도 미국산은 약소한 규모여서 수입중단 조처 때문에 쇠고기 수입시장이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수입 잠정중단 조처가 미국과 벌이는 무역전쟁의 시작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코란 템포>의 농업부 출입기자 로잘리나 씨는 “농업부 관계자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정부의 이번 결정이 얼마 전 있었던 ‘미국의 팜오일 걸고넘어지기’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도 오간다”라고 취재 뒷얘기를 전했다. ‘미국의 팜오일 걸고넘어지기’란 이렇다.
지난 2월 초 미국환경보호기구(EPA)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는 팜오일(CPO)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며 검증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인도네시아 팜오일 품질에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수입을 중단할 경우 세계시장에서 인도네시아 팜오일 수출은 타격을 입게 된다. 인도네시아가 미국에 수출하는 팜오일은 전체 수출의 0.6%에 불과하지만 미국 시장의 영향력이 유럽과 다른 대륙에 미치기 때문이다. 팜오일은 인도네시아의 대외 수출품 가운데 석탄(12.5%)과 석유가스(11.2%)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중(8.5%)을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끈할 수밖에 없던 사안이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전초전이라는 시각에 대해 육류유통협회 아흐마디 하디 사무국장은 “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미국산 소는 명백히 문제가 드러난 것이고, 인도네시아 팜오일 문제는 미국의 일방적인 의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인도네시아가 쇠고기 자립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산 유통을 강화했기 때문에 수입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점을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 영자 신문 <자카르타 글로브> 독자 웡데소 씨는 독자토론 게시판에서 “언제까지나 미국 압력에 시달리며 통상 결정이 흔들릴 순 없었는데, 이번 정부의 결정은 현명했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급이 5성급 호텔과 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을 쥐고 흔들 수는 있어도 인도네시아 안방 식탁은 문제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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